[소 개]연 혁초대작가작품·포토갤러리
 


 
1945년 민족의 해방과 더불어 공주, 부여 등지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지역과 대전, 천안, 서산, 예산 등 중부문화권이 충남미술을 형성하기 시작한 기점이라고 볼 수 있다.

온화한 기후와 옛부터 상징적으로 불리워 오던 청풍명월의 고장, 그리고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한 지리적 여건, 따뜻하고 인간적이며 세련된 백제문화의 전통 등은 충남의 예술적 토대와 양분이 되었다.

해방이후 1953년 3월 충남미술협회가 조직되었으며, 충남 일원과 대전지역에서는 각급 학교에 재직중이던 미술교사들을 중심으로 한 활동이 이루어졌고, 초기 어려움을 무릅쓰고 충남화단을 개척해 온 선배 미술인들의 노력속에서 점차 조직화되고 전문화되기 시작한 충남미술은 1960년대 들어서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충남미술의 변화기라고 할 수 있는 1970년대에 "충청남도 미술전람회"가 개최되었고, 1973년부터 각 대학에 미술과가 신설되어 졸업생이 배출되면서 대전에 이어 천안, 공주지역에서 미술협회가 창립되어 지역작가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되었고, 유파나 그룹별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게 되었다.

"충청남도 미술전람회"는 1971년 5월 11일 제1회의 막을 올리면서 시작되었다. 그후 충남지역의 많은 작가들이 충청남도 미술전람회를 통해 작품활동의 폭과 작가 역량을 넓혀 왔다. 당시 충남, 대전지역은 미술협회가 결성되어 활동하고 있었고, 4년제 미술학과도 공주사대, 목원대, 한남대에 설립되면서 제6회부터는 출품자 수도 400여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심사위원이 속해 있는 대학 및 인맥과 연결된 입상작품의 수도 늘어났고, 추상, 구상계열의 편파적 심사로 수상작 선정에 있어서 부분적으로 말썽을 빚기도 하였다. 이런 표면화되지 않은 문제들은 미술대전의 구설수와 함께 지역작가들간에 갈등과 불신의 뿌리가 되었고, 기존의 권위주의와 보수주의에 대하여 젊은 작가층의 실험적이며 참신하고 신선한 작품을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현재와 같은 공모전이 있기까지 이렇게 학연과 파벌 등으로 인한 잡음과 말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충남미술대전은 어떠한 형태나 의미로든 충남지역의 향토미술 문화발전에 이바지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인작가에게 길을 터주는 역할을 담당하여 미술대전에서 4회 특선이상 수상자들이 충남, 대전의 미술대전 초대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역대 수상작가들이 현재 충남과 대전지역의 미술활동을 주도하고 있고, 학교 교사로서 또는 전업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충남미술대전이 제19회에 이른 1989년에는 행정구역의 개편으로 충남과 대전이 분리되면서 미술대전도 "충남미술대전"과 "대전광역시 미술대전"으로 분리되어 개최되었으며, 분리되기 전인 제18회 충남미술대전만해도 총 출품작이 1,000여점에 이르는 양적, 질적 팽창을 이루었다.

초대작가도 제1회때에는 박승무(한국화), 이인영(서양화), 이창호, 이종수(공예) 등 4명이었으나, 현재는 200여명에 이르는 초대작가들이 충남, 대전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충남미술대전이 지역을 대표하는 미술행사로 자리잡기까지는 이 고장 미술인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큰 뒷받침이 되었고, 또 해마다 문제점을 찾아내어 합리적인 개선을 도모해 온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 중반이후 청년세대들이 각종 미술제와 기획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권위주의와 보수주의적 경향은 다소 주춤해졌고, 추상계열의 입상작품이 눈에 띄게 많아지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이제는 충남미술대전이 더 합리적인 운영과 발전적 경향의 수용으로 작가들의 참여 의욕을 고조시키고 지역문화와 미술의 발전에 초석이 되는 공모전으로 21세기를 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충남미술대전 도록